Maintenance of Everything

서론

생명체는 그 생명체가 속한 환경을 지속적으로 가꾸어 나갑니다. 비버는 댐을 유지하며 거기에서 살아가고, 식물은 자신이 자라는 토양의 생명을 돌봅니다.

인간도 자신의 신체, 차량, 집을 비롯한 많은 것들을 애정을 가지고 관리합니다. 무언가를 가꾼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을 쓴다는 것 이상의 감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몸에 나쁜 음식은 안 먹고, 치아를 깨끗이 관리하고, 운동하고, 시간을 소중하게 쓰는 것. 스스로의 몸을 유지 보수할수록 그것을 더 아끼고, 사랑하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 대상에게 느끼는 애정과 관심을 사랑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무언가를 유지 보수한다는 것은 나의 생명을 그것과 나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내가 직접 작성한 코드가 AI가 만들어 낸 코드와는 무게감이 다른 걸까요?

어린 왕자는 지구에 와서 장미 정원을 발견하고 충격에 빠지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꽃을 가진 부자라고 생각했는데, 흔한 장미꽃 하나를 가졌었을 뿐이었어.”

하지만 이후 여우와의 대화를 통해서 소중한 것을 깨닫습니다.

“네 장미를 그토록 소중하게 만든 건 네가 그 장미를 위해 쏟은 시간이야.”

유지 보수라는 것은 무언가가 고장 나지 않게, 잘 동작하게 만드는 행위이지만, 정신적으로 그 대상과 맺는 교감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유지 보수는 필수적이다

작가 스튜어트 브랜드는 유지 보수가 필수적이라고 합니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자연 현상은 엔트로피가 커지는 방향으로만 진행합니다. 즉, 시스템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복잡하고, 무질서해집니다.

배에는 녹이 슬고, 잘 작동하던 총이 고장 나고, 소프트웨어가 복잡해지죠. 하지만 유지 보수는 굉장히 지루한 작업이고, 하루 이틀 빼먹는다고 눈에 보이는 건 아니라서 사람들은 그 중요성을 간과합니다.

하지만 세계적인 선원인 무에타시에는 유지 보수를 간과하는 것을 경고했습니다.

If you don’t fix something when you first see it beginning to fail, it is very likely to finish failing just when it is the most dangerous and the hardest to deal with, such as in the midst of storm.

혹시 사소한 무언가를 그냥 넘겼다가 나중에 그것이 큰 문제가 되어 되돌아온 적이 있으신가요? AI가 만들어 준 잘 이해가 안 되는 코드를 대충 넘어갔다가, 나중에 그 부분에서 예상치 못한 버그가 발생한 경우. 인간관계에서 서운한 부분을 참고 넘겼다가, 그 상처가 커져서 큰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도 있죠.

이렇게 살아가다 보면 그 일을 해야 하는 타이밍이 있다는 것을 감각적으로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타이밍에 해야 할 일을 미루면 나중에 부메랑처럼 돌아온다는 것을 깨닫게 되죠.

미군의 Sustainment

전쟁에서 유지 보수는 정말 중요합니다. 미국과 베트남의 전쟁에서 미군의 총 M16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아시나요? M16은 수많은 미국인을 죽였습니다. (베트남인이 아니라 미국인을요.) M16은 겉으로는 좋은 총이었습니다. 5.56mm 탄을 사용해서 가볍고, 더 빠르고, 사거리도 길고 살상력도 높았죠. 하지만 그런 정교함을 위해서 총의 구조는 복잡했었습니다. 베트남 전쟁의 정글 속 습한 늪지와 진흙들은 M16에게 쥐약이었습니다.

M16은 총알이 걸렸을 때 분해하고 수리하는 데 시간이 오래 소요되었고 그들이 수리하는 동안 베트남군은 AK47을 들고 돌격해 왔죠. (또한 부품들이 정교해서 분해하다가 부품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와 다르게 AK47을 만든 미하일 칼라시니코프는 처음부터 언제 어디서든 고장 나지 않고 사용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무기를 설계했습니다. 그로 인해서 최악의 환경에서도 믿고 사용할 수 있는 총이 되었죠.

미군은 유지 보수를 시스템화하고, 이를 Sustainment라는 개념으로 만들었습니다. 유지 보수는 정상 상태를 유지하고 고장을 예방한다면, Sustainment는 임무 수행 능력이 계속 유지되도록 전체 체계를 운영하는 것입니다. 즉, 목표를 위해서 행해야 하는 반복적인 유지 보수를 시스템적으로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를 다룬 것이죠.

미군의 Sustainment와 유지 보수의 중요성

유지 보수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이를 하나의 철학으로 만든 것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미군이 위대한 이유는 B-1B 랜서나 항공모함 같은 최신식 무기들뿐만 아니라, 교훈들로부터 만든 시스템이 대단하기 때문에 그들이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끼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내면의 평화

이 책은 각 챕터마다 삽화가 많이 있어서 그림을 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특히 유지 보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배워서 좋았습니다. 그전까지는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책을 읽은 뒤에는 대상과 나의 관계를 끈끈히 만들고 교감한다는 관점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무에타시에가 했던 말이 인상적이었는데요,

I spent my time reading, sleeping, eating. The good, quiet life, with nothing to do. He was unafflicted with worry that his gear might fail.

그는 유지 보수를 통해서 내면의 평화를 얻었습니다. 유비무환처럼 더 이상 두려워할 것이 없었던 것이죠.

미디어의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많은 유혹에 휩싸입니다. 그리고 정작 해야 할 일들은 뒤로 미뤄 둔 채, 숏츠에 시간을 뺏기죠. 이런 삶이 우리를 자유롭고 행복하게 만들어 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삶의 주도권을 가지고 해야 할 일을 하고, 더 나아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스스로를 유지 보수하는 것. 그런 삶이야말로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어 주지 않을까요?

“Prepare for the worst.” It freed him. -무에타시에

그 외 인상 깊었던 구절들

Reliability and maintainability were not mentioned in the specifications.

M16을 제작할 때 안정성은 스펙에 고려되지 않았다는 내용 소프트웨어를 만들 때도 흔하게 볼 수 있는 현상이며, 엔지니어라면 항상 안정성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The answer to all these requirements was simplicity. Kalashnikov was guided by the words of Soviet gunsmith Georgy Shpagin “Complexity is easy; simplicity is difficult.”

AK47은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병사들을 위해서 만들어졌다. 그들은 체계적인 훈련을 받지도 못했고, 매뉴얼을 읽을 수도 없었다. AK47의 생김새는 중요하지 않았고, 단지 쉽고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돌격소총을 만들어야 했다. 이러한 요구 사항을 충족하기 위해서 칼라시니코프는 단순한 구조로 총을 설계했다. 여러 실험을 통해서 안정적이고 쉽게 사용할 수 있는 AK47이 탄생했다.

“Never tell people how to do things. Tell them what to do and they will surprise you with their ingenuity.”

팀원들에게 지시할 때는 구체적인 방법을 다 설명하기보다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이유를 들어 납득시킨다면 그들은 천재적인 방법을 찾아서 당신을 놀라게 할 거라는 조언

Maintainers are realists.